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은 위로하거나 안심시키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고, 도전하게 하며, 육체, 정체성, 인간 존재의 경계를 허물어뜨립니다. 2021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티탄은 그 극단적인 시각적 묘사와 금기 파괴적 서사로 즉각적인 화제를 모았지만, 그 충격적인 외피 너머에는 ‘변화’, ‘트라우마’,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조용한 갈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확장 글에서는 티탄이 어떻게 육체와 기계의 융합을 통해 성별, 정체성, 가족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해체하고, 끔찍하면서도 인간적인 변형을 통해 근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를 살펴봅니다.
티탄, 기계화된 트라우마
알렉시아의 삶은 머리에 티타늄 금속판이 삽입되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다시 시작됩니다. 이 순간은 그녀의 육체에 새겨진 상처일 뿐만 아니라, 규범적 인간 경험에서의 단절을 상징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사회가 요구하는 ‘형태’에 들어맞지 않습니다.
성인이 된 알렉시아는 기계, 특히 자동차에 대해 깊은 애착과 에로틱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페티시가 아닌, 자신과 닮은 차가운 존재에 대한 공명입니다. 자동차 위에서의 퍼포먼스는 시각적 쾌락을 제공하지만, 그녀의 표정과 시선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혼란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보이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분류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갈망합니다.
변신은 회복이다: 다른 존재가 되기
알렉시아가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자신을 실종된 소년 ‘아드리앵’으로 위장하는 장면은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선 정체성의 재창조입니다. 그녀는 가슴을 붕대로 감추고, 코뼈를 부러뜨리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성별은 절대적 경계가 아니라, 이동 가능하고 불안정한 영역으로 그려집니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변화된 정체성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드리앵의 아버지인 뱅상은 혈액검사도 거부한 채 그녀를 받아들입니다. 이 받아들임은 진실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됩니다. 정체성이란 감정의 생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관계는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기계로 임신하다: 공포와 신성의 공존
알렉시아의 자동차 임신은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 설정은 단순한 괴담이 아닌, 강력한 메타포로 작동합니다. 그녀의 배는 불어나고, 엔진오일이 흘러나오며, 금속이 살을 뚫고 나옵니다. 육체가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자기 창조’의 고통을 시각화합니다.
자동차는 이 영화에서 비정상적이지만 판단하지 않는 자궁의 이미지입니다. 자연적이지 않지만, 거부당하지도 않습니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정체성,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결국은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과 자신을 잉태합니다.
불과 육체: 혈연을 넘는 유대
뱅상은 규율과 근육, 통제 속에 자신을 감춘 인물입니다. 그가 이끄는 소방서의 세계는 남성성과 질서로 상징됩니다. 그러나 그는 실종된 아들을 향한 절절한 사랑으로 무너져 갑니다. 알렉시아를 ‘아드리앵’으로 받아들이며, 그는 혈연보다 더 본질적인 유대—‘선택한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관계는 설명보다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뱅상은 알렉시아를 치료하고, 식사를 주며, 숨겨줍니다. 알렉시아는 말없이 그를 지켜보며 감정의 균열을 받아들입니다. 둘 사이에 오가는 묵묵한 감정은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이자, 가족이라는 개념의 재정의입니다.
티탄 소리, 공간, 감각: 형태 너머의 정체성 연출
티탄은 대사뿐 아니라 사운드와 시각 디자인을 통해 정체성을 이야기합니다. 엔진음, 금속 마찰, 뼈 부서지는 소리는 모두 알렉시아의 내면과 신체 변형을 증폭시키는 요소입니다. 화면은 클로즈업과 협소한 공간을 통해 몸과 감정의 ‘갇힘’을 시각화하며, 탈피 전의 고통을 그려냅니다.
이러한 연출은 화려하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지만, 매우 진실합니다. 변화란 아름답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피로 얼룩지고, 비틀리고, 때로는 괴물처럼 보이는 과정임을 티탄은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티탄 마무리 : 포스트휴먼 시대의 정체성 우화
티탄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대신,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던집니다. 정체성을 고정된 범주로 나누고자 하는 세계에서, 이 영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 충돌과 모순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나를 이야기합니다.
알렉시아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남성인가? 여성인가? 영화는 그 모든 정의를 거부합니다. 대신에 ‘되기(becoming)’의 가능성, 사랑받기 위한 투쟁, 그리고 선택된 연대 속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존재성을 조명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금속 척추를 가진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은 대답이 아닌 질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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