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이터널스는 단순한 우주적 스펙터클이 아닌, 불멸의 무게와 공감의 취약성, 선택의 도전을 묵직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섬세한 연출 아래, 신과도 같은 영웅들의 갑옷 너머에 존재하는 깊은 인간적 고뇌가 드러납니다. 이들은 무적이기보다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1. 이터널스, 불멸이란 고독한 시간의 여정
이터널들은 인간의 시간축 밖에서 살아갑니다. 문명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우정이 피어나고 이별하는 순간들을 수없이 겪습니다. 세르시(젬마 찬)는 인간을 깊이 사랑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상실을 경험합니다. 그녀가 겪는 고통은 물리적 상처가 아닌, 감정적 소진에서 비롯됩니다. 사랑했던 이들이 늙고 떠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겪는 것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입니다.
킹고(쿠마일 난지아니)는 화려한 명성을 통해 진심을 숨기고, 이카리스(리처드 매든)는 임무에 몰두하며 감정을 회피합니다. 불멸이라는 운명이 이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의 고립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2. 회색의 리더십: 아잭의 딜레마
아잭(살마 헤이엑)은 이터널스의 정신적 리더로, 인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파괴를 위한 준비라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그녀의 내면을 갈가리 찢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창조주의 명령 사이에서 갈등하며, 그녀는 결국 인간 편에 서기로 결정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선악의 구도가 아닌, 복잡한 윤리적 고민을 보여줍니다. 이터널스는 리더십의 본질이 얼마나 모호하고 고통스러운지를 현실적으로 묘사합니다.
3. 시간 속에서의 사랑: 파스토스, 스프라이트, 그리고 관계의 대가
불멸의 존재에게 사랑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스프라이트(리아 맥휴)는 영원히 13세로 머무르며, 자라지 못하는 외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녀는 성숙함과 인정받기를 갈망하지만, 시간은 그녀를 배신합니다.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인간과 가정을 이루며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만, 히로시마 사건을 통해 문명의 파괴성에 깊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는 인간을 도운 신이자, 그 고통의 대가를 짊어진 존재입니다.
4. 트라우마와 충성심: 테나와 길가메시
테나(안젤리나 졸리)는 마드 와이리라는 기억 붕괴 증상을 겪으며,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그녀의 정신은 시간의 누적으로 파편화되며, 영화는 이터널도 정신적 붕괴를 겪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길가메시(마동석)는 그녀 곁에서 묵묵히 지키는 존재입니다. 그들의 관계는 말 없는 헌신과 믿음으로 표현되며,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혼돈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5. 우주적 질서에서 개인의 도덕성으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순응이 아닌 저항입니다. 세르시는 우주의 창조주인 셀레스티얼의 계획에 반기를 들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나섭니다. 그녀의 선택은 단순한 반란이 아닌, ‘자유 의지’에 대한 선언입니다.
이카리스는 끝까지 임무에 충실하지만, 그 충성은 사랑을 잃고 자아를 무너뜨리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그의 고통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 “정의와 진실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와 닮아 있습니다.
6. 이터널스 존재론적 질문: 선택, 운명, 삶의 의미
이터널스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가진 목적이 정해져 있다면, 삶에 의미가 있는가?" 킹고의 중립, 스프라이트의 질투, 파스토스의 죄책감—all 이들은 힘과 능력보다 더 중요한 도덕적 고민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여정은 우리가 살아가며 끊임없이 마주하는 의문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과연 스스로를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운명의 설계 안에서 움직이는가?
이터널스 결론 : 신도 상처받는다
이터널스는 전통적인 히어로 영화와 다릅니다. 이 영화에서 신은 눈물 흘리고, 배신하고, 용서하며, 변합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 신들을 신이 아닌, 가장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선택을 하고, 실수하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들의 진짜 힘은 광대한 능력이 아닌, 감정과 윤리, 사랑과 고통을 껴안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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